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8744
성명
한자 金鳳煥
이명 晦峰(號), 君翼(字)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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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계몽운동 포상년도 1990 훈격 애족장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제자(弟子)로서 유시(幼時)로부터 경세제민(經世濟民)(學)집중(執中)하였고, 1901년에 지방장관(地方長官)추천(推薦)으로 중추원(中樞院) 참의(參議)가 되었는데, 세제개혁의(稅制改革議)제출(提出)하였고 1903년에는 또 인재(人材) 택용(擇用), 군비 확충(軍備擴充)등의 헌의(獻議)를 하였으나 채용(採用)이 되지 아니하므로 괘관귀향(掛冠歸鄕)하여 은거 독서(隱居讀書)하다가 1910년 합병(合倂)(報)를 듣고 북망통곡(北望痛哭)하여 구혈일두(嘔血一斗)(後) 왜경(倭警)구금(拘禁)(當)하였으나 항성불굴(抗聲不屈)하였다 옥중(獄中)(病)으로 석방(釋放)되어 집에 돌아와 수일(數日) (後)분사(憤死)하였다.(회봉집(晦峯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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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전라남도 장성(長城)군 서삼(西三)면 금계(錦溪)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에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이 되어 세제(稅制)개혁안을 제출했으며, 1903년에는 또 인재택용과 군비확충 등의 헌의를 하였으나 채용되지 아니하므로 사임하고 귀향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여 나라가 망하자 이 소식을 듣고 통분을 이기지 못하여 북쪽을 바라보고 통곡하다가 일제를 격렬하게 규탄하였다. 향리에서 제자들과 항일투쟁을 계획하던 중 일제 헌병경찰이 그를 체포해서 투옥했으나 일본을 꾸짖고 규탄하는 항성(抗聲)이 그치지 않았다.

옥중에서 중병을 얻어 석방되어 집에 돌아왔으나 계속 피를 토하다가 며칠 후에 절명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충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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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봉환 호 : 회봉(晦峰) 전라남도 장성(長城) -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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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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