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철산(鐵山) 사람이다.
1925년 정의부(正義府)에 가입하여 오동진(吳東振)의 지휘를 받고 1927년 5월경 제5중대장 김석하(金錫夏)가 인솔하는 특공대에 소속된 국내에 진입하였다.
그는 김봉수(金奉秀)·장기천(張基千)·최성춘(崔成椿) 등과 함께 평북일대에서 5개월간 일경사살, 군자금모집 등의 활동을 벌이면서 일경의 경계망을 넘나들었다.
1927년 7월 11일에는 의주군 가산면에서, 동 21일에도 같은 가산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24일에는 구성군 관서면에 이어 고관면(古館面)과 수진면(水鎭面)을 거쳐 15일에는 운천동(雲川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곳에서 일경에게 포위되어 맹렬한 사격전 끝에 포위망을 뚫고 도피하였으며, 곧 이어 수진면사무소를 습격·파괴하였다.
이들은 의주군 구성동 대장현(舊城洞大將峴)에 이르러 두사람씩 1조로 나누어 1대는 주읍 식산은행지점을, 다른 1대는 용만(龍彎)금융조합을 습격하기로 하였다. 그는 농민으로 변장하고 장기천과 함께 금융조합에 들어가 수천원의 현금을 빼앗아 문밖으로 나와 장꾼을 모아놓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뒤에 일장 연설을 하고 시장으로 들어갔다. 도중에 일경을 만나자 총격전을 벌이고 갖고 있던 돈을 모두 장꾼들에게 뿌려버리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들은 다른 1조와 합류하여 철통같은 경계망을 돌파하여 압록강을 건넜으며, 9월 9일에는 대안(對岸)의 구련성(九連城)에 도착하였다. 이후 계속하여 본부로 향하던 도중 봉황성(鳳凰城)에서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1929년 6월 2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장기천은 징역 15년형, 김봉수(金奉秀)는 13년형, 최성춘(崔成椿)과 그는 각각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20면
- 동아일보(1929. 6. 12, 7. 16)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89·54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