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 복역(服役) : 징역을 삶.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영변(寧邊) 사람이다.
구한국(舊韓國) 군인으로 복무하였으나, 1907년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만주로 망명하여 애국투사들과 교유(交遊)하다가 귀향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에 앞장섰다가 일경의 감시를 피하여 동년 5월 다시 남만주로 망명하였다. 관전현(寬甸縣)에서 대한독립단에 입단하였으며, 이어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의 결사대장에 임명되었다.
1920년 8월 미국의원단이 내한하는 기회에 총영장 오동진(吳東振)의 밀명을 받고, 국내의 일제(日帝) 중요기관 폭파와 일제 고관들을 암살하여 국제적인 여론을 일으킬 목적으로 권총과 폭탄등을 휴대하고 입국하였다. 동년 8월 16일 친일파인 평북 자성군수(慈城郡守)를 사살하고, 황해도 장연(長淵)으로 가서 역시 친일파인 군수를 살해하였다. 이로 인하여 일경의 감시가 강화되자 그는 동지들과 함께 베장사로 가장하고 서울로 들어왔다. 서울에서 총독부, 서울역, 종로경찰서 등을 폭파할 계획을 세우고, 중국 요정 아서원(雅敍園)에서 김성탁(金聖鐸)·김최명(金最明) 등 동지들과 함께 결의를 다짐하는 모임을 갖고 있을 때 이를 탐지한 일경에게 포위당하여 체포되었다. 그는 체포되어 가면서도 동지들을 돌아보며 태연한 낯으로 "요정에서 회식하고, 자동차 타고 잡혀가니 남아가 할 만한 일이로다"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다.
그는 1921년 3월 10일 징역 10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 무장독립운동비사 63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545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36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99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3권 10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35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274·67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2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172-17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