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역(服役) : 징역을 삶.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경기도 광주(廣州) 사람이다.
1910년 국권침탈 이후 부친을 따라 만주로 망명한 그는 1919년 4월 안도현(安圖縣)에서 독립만세운동 시위를 주도하면서부터 본격적 항일운동을 시작하였다. 동년 7월 단지동맹결사대(斷指同盟決死隊)를 조직하여 손가락을 끊어 항일투쟁을 맹세하고 그 참모장이 되어 20여 명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가담시켰다.
그리고 대한정의군정사 등과 협조하여 무장항일투쟁을 계획하였다. 그는 동지들과 함께 훈련 중 1919년 9월 안도현 두도구에서 황용기(黃龍起)와 함께 체포되었으며, 여기서 독립운동을 더 이상 못하도록 저지 억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행한 재류(在留) 금지 명령으로 동년 12월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다니면서 그후 나남(羅南)지방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동지 규합에 나섰다.
이를 바탕으로 상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긴밀한 연락을 통하여 연통제(聯通制)에 가담 활동하였다. 함북 경성군에서 연통제 조직을 완료하고 임정과의 업무연락, 군자금 조달, 기밀 문서의 수발(受發)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를 포함한 조직원들은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본경찰관 주재소의 병기탄약을 탈취하여 경찰관서를 폭파하였는데, 이 일로 나남경찰서에 검거되어 1920년 8월 11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淸津支廳)에서 징역 4년형을 받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는 격렬하고 과감한 옥중 투쟁을 계속함으로써 잔혹한 사형(私刑)과 고문을 당하다가 2년이 거의 다 된 1922년 7월 18일 끝내 옥중에서 순국(殉國)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12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854 855 870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74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174 255면
- 제적등본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33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86면
- 박은식전서 상권 65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