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의주에서 시위에 참가하고 일경의 감시를 피하여 동년 4월 만주를 거쳐 상해로 피신하였다.
상해에서는 삼육(三育)대학에 재학하면서, 1921년 9월에는 태평양회의를 기회로 북경(北京)의 각 신문에 "극동평화는 한국의 독립이 되지 않고는 원만한 해결을 얻지 못하리라."는 논문을 쓰는 한편, 경진보사(京津報社) 소진청(邵振靑)사장에게 혈서를 써 보내 한국의 독립을 적극 지원해 줄 것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1921년 10월 일본내 학생의 조직 공작 사명을 띠고 일본에 입국하였다가 1921년 11월 8일 동경(東京)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의주로 송환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77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91면
- 동아일보(1921.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