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황해도 안악(安岳) 사람으로 기독교(基督敎)인이다.
1919년 3월 28일 안악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이 지역은 3월초 이래로 끊임없이 만세시위가 전개되고 있었는데, 이날의 만세시위는 그가 다니고 있는 대원면 가양리(大遠面可陽里)교회 신도들이 주축이 되었다.
이날 정오경 그가 읍내 교회당의 종을 치는 것을 신호로, 많은 군중이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하였다.
그러나 이를 제지하기 위해 출동한 일본 헌병과 경찰에 의해 임승문(林承文)·임동균(林東均) 등이 구타당하여 중상을 입은채 해산하였다.
그후 그는 일제의 검속을 피하여 만주(滿洲)로 건너가, 독립군으로서 지하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었다.
출옥후에는 일본 경찰의 계속적인 감시를 받으면서도 육영사업에 종사하며, 2명의 아들을 중국으로 보내어 광복군(光復軍)으로 활약하게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29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