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경상남도 창원(昌原)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수원(水原)·선천(宣川)·수안(遂安)의 의거와 더불어 4대 의거로 손꼽히는 소위 삼진의거(三鎭義擧)에 참가하였다.
이 항일의거는 1919년 3월 28일의 고현(古縣)시장 의거에서 피신하였던 변상태(卞相泰)·권영대(權寧大)·권태용(權泰容) 등이 비밀리에 많은 동지를 규합하여 다시 일으킨 진전면(鎭田面)·진북면(鎭北面)·진동면(鎭東面)의 주민들이 연합하여 일어난 대규모 만세시위이다.
동년 4월 3일 오후 2시경, 약 5천여명의 시위군중이 사동리교(社洞里橋)에 이르렀을 때, 이미 대기하고 있던 진동주재 일 헌병과 보조원 및 일본 재향군인들과 대치하게 되었다. 시위군중과 일군과의 피비린내나는 맨주먹 혈투가 벌어졌으며, 결국 마산에서 일군 야포대대의 응원군이 도착하여 야만적인 발포에 의거 현장에서 8명이 순국하고 22명이 부상하는 일대 참사가 일어났다.
그도 이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어 실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에도 농업에 종사하면서 동지들과 연락하며 항일운동을 계속하였으나 큰 뜻을 펴지 못하였다.
이 삼진(三鎭)의거를 기념하고, 그 애국정신을 길이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1963년 10월에 이곳 지방민들이 순국장소인 사동리교(社洞里橋) 옆에 창의탑(彰義塔)을 세웠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동아일보(1920. 10. 25)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245∼251면
- 3·1운동실록(이용락) 6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