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기도 파주(坡州)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 직후 전 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주도 결성한 대동단(大同團)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폈다.
대동단은 한민족의 민족역량을 결집하여 민족적 대동단결과 실력양성을 표방하고 민족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담당할 것을 목적으로, 다양한 계층의 인사들을 규합, 주로 각종 인쇄물의 인쇄·배포 등을 통한 독립사상의 고취와 동단의 선전 및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1920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에서 파견되어 군자금 모집 및 조직확대 활동을 전개하고 있던 허 영(許瑛)을 만나 그로부터 임시정부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 중이나 군자금 조달이 어려워 재정곤란에 처해 있다는 말과 함께 조선 청년 모두가 이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이에 공명하여 군자금 모금활동을 펴기로 결의하였다.
그는 허 영의 지시를 받고 동향(同鄕)의 최경로(崔敬老)·황인수(黃麟秀)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에 송금하기로 뜻을 모으고, 경기도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는 제1차로 2만원을, 그후 제2차로 몇천원의 군자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로 송달하며 활동을 계속하던 중 일경에 붙잡혀 1921년 5월 3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21. 5. 31 경성지방법원)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1049∼1053면
- 동아일보(1921. 5. 26,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