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전북 순창(淳昌) 사람이다.
1907년 원주 진위대 특무정교(正校) 민긍호(閔肯鎬)의 의병진에 가담하여 강원·충북·경북지방에서 일본군 수십명을 사살하였다.
1910년에는 가산(家産)을 정리하여 폭탄 400여개를 영국인이 경영하는 태화(泰華)상회로부터 구입하여 전국 경찰서를 일제히 파괴할 계획을 추진하다가 실패하였다. 일본 경찰의 추격으로 만주에 망명하여 대종교에 입교한 후에는 시교원(施敎員)으로서 동지를 규합하였다. 한편으로는 대한유생(儒生)독립단을 조직하여 단장으로서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1919년부터 1920년까지는 상해임시정부의 통신원으로서 국내에 밀파되어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1년 6월 2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어 징역 3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1926년 7월에는 전북 김제군 원평(金堤郡院坪)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계속하다가 김성준(金成俊)의 밀고로 체포되어 동년 10월 29일 전주지방법원에서 다시 징역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8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85·92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868면
- 판결문(1921. 6. 2 고등법원)
- 판결문(1926. 10. 29 전주지방법원)
- 동아일보(1926. 7. 10, 7. 15)
- 호남절의록 卷之三 9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1078·107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