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충남 홍성(洪城) 사람이다.
1919년 중앙고보(中央高普) 졸업반이던 그는 지하단체로서 김상옥(金相玉)이 주도하던 혁신단(革新團)에 가입하였다. 이 조직은 독립사상의 고취·선전을 목적으로 하였는데, 단원으로는 그를 포함하여 이춘식(李春植)·정설교(鄭卨敎)·전우진(全宇鎭) 등 9명이 있었다. 혁신단에서는 결성 목적의 실현을 위하여 기관지 〈혁신공보(革新公報)〉를 발간하였는데, 주요 기사로서 국내외에서 취재되는 독립운동전선(獨立運動戰線)의 소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논설 등을 게재하고 1회에 등사판 1천부씩을 찍어냈다.
그러나 9월이 되어서는 재정공급이 여의치 못하고 인쇄를 책임맡았던 서대순(徐大順)이 붙잡혀 인쇄시설 일체를 압수당하게 되자 더 이상의 신문발행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는 1920년 3월 20일 구국민단(救國民團) 사건에 연루되어 붙잡혔으나, 10월 26일 예심종결로 풀려났다. 1921년에는 김상옥 주도의 암살단(暗殺團)에서 활약하다가 붙잡혀, 같은 해 11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년 4개월만에 가출옥하였다.
출옥 후, 그는 김상옥·이혜수(李惠受) 등과 모의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1923년 1월 12일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투척사건에 연루되어 붙잡혔다. 그는 1923년 10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장기(長期) 2년, 단기(短期) 1년 6월형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1041∼1043·1046∼1049·1052∼1054·106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529·53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59·361·36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106·109·110·251·776∼788면
- 판결문(1923. 10. 10 경성복심법원)
- 기려수필 288·322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92·431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0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