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경남 의령(宜寧) 사람이다.
일본 대판중학교의 야간부에 고학으로 재학중인 1941년 9월에, 식민통치하에서 조선민족이 불행을 극복하는 길은 오직 독립뿐이라는 것을 절감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때 일거에 봉기하여 독립을 달성한다는 것이었다.
우선 동지포섭에 나선 그는, 남상순(南相淳)·조경복(趙景福)·동방옥모(東坊沃模 창씨명)·송촌대교(松村大敎 창씨명) 등을 포섭한 뒤 비밀결사 충성회(忠誠會)를 조직하였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항일결사의 결성을 의도하여, 미리부터 국수대중당(國粹大衆黨)에 입당하여 조직결성에 필요한 경험 및 지식을 닦았고, 또 당기 및 당원마크를 고안하기도 하였다.
그의 주도로 결성된 충성회의 운동방략으로는 고향에 야간사숙을 열고 수시로 귀국하여 민중계몽에 힘쓰는 한편, 국제정세를 주시하고 일·소가 개전하면 즉시 귀국하여 국내의 청소년층을 지도하여 독립투쟁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들은 과거의 독립운동이 실패하게 된 원인은 실력의 결핍에 있었다고 보고 실력양성에 힘을 쏟았으며, 안중근(安重根)과 같은 선각자의 충정을 명각하면서 30여차례의 모임을 갖고 항일활동을 추진했다.
그러던 중 동조직의 활동이 발각됨으로써 1942년 12월에 그는 일경에 붙잡혔다.
붙잡힌 후 그는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가 1944년 2월, 대판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8·15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소화특고탄압사(명석박륭) 8권 149∼15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3권 200·201·203면
- 수형인명부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1370·137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