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기 포천(抱川) 사람이다. 1941년 9월 만주(滿洲)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하고 이에 필요한 자금을 수합하던 중 일경에 붙잡혀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후 1917년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활동하였다. 박상진(朴尙鎭)·채기중(蔡基中) 등이 주도한 대한광복회는 1915년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이 통합하여 결성된 혁명단체였다. 그는 이병호(李秉昊)와 함께 전라도 지역의 부호를 대상으로 군자금 수합에 힘을 쏟았고, 또 친일부호 처단에 필요한 무기를 채기중에게 제공하였다. 그러던 중 1918년초 대한광복회의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일경에 붙잡혀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광복회의 재건에 힘쓰다가 1921년 9월 다시 붙잡혔으나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예심종결조서(1918. 10. 19 공주지방법원)
- 매일신보(1914. 12. 1)
- 동아일보(1921. 9. 3)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1권 673∼7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