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의암 유인석(柳麟錫)의 재종형이다.
1895년 명성황후가 일제의 사주에 의하여 시해 당한 을미사변이 발생하고 ,이어서 11월 단발령이 내려졌다. 이에 통분함을 금치 못하여 일제에 복수할 것을 결의하고 유중락(柳重洛)·유봉석(柳鳳錫)·김경달(金敬達)과 함께 거의하였다.
그후 제천(堤川) 의진이 형성되어 유인석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자 이에 합류하여 서무(庶務)를 관장하였으며, 수 차례 적과 접전하였다.
이때 의병들이 관군의 의병 해산책에 회유되어 이탈자가 늘어가자 통탄하여 '고병정가(告兵丁歌)'를 작사하여 선포하고 애국심을 고취하였다.
그러나 세부득이하여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하던 이강년(李康秊)을 제외한 이춘영(李春永)·안승우(安承禹)·김백선(金百先) 등 의병장이 전사하자 의진을 해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907년 민긍호(閔肯鎬)·이강년(李康秊)과 재기하다가 실패하였으나, 다시 춘천(春川)·원주(原州) 등지에서 유영석(柳寧錫)·유제곤(柳濟坤)·박선명(朴善明) 등에게 명하여 의병 600명을 모집하여 가평(加平)에서 왜적과 교전하다가 부상을 당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자 만주 환인현(桓仁縣)에 망명하였다가 1913년 11월 21일 그곳에서 병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8권 6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권 400·420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0·3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170·263∼284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9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