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경기 평택(平澤) 사람이다.
1919년 형평사(衡平社)를 창립하여 대표로서 사회개혁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24년에 있었던 형평사 본부의 이전 문제에 있어서는 서울 또는 대전으로 옮기는데 찬성의 뜻을 표하였다. 그 결과 2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대전에서 이른바 대전 회의를 열고 전라·경기·강원·평안도의 동지들을 모아 형평사혁신회(衡平社革新會)를 발기하고 형평사 본부의 이전을 결의하였다.
동년 3월에는 다시 형평사혁신회의 창립총회를 천안(天安)에서 열고 혁신회 창립 동기에 대한 설명과 함께 2주일 이내에 형평사 본부를 서울로 옮길 것을 결의하고 장지필(張志弼)등 4명과 함께 이전 준비위원장으로 선정되었다.
또한 동년 8월에 개최된 조선형평사 중앙총본부 임시대회에서는 조사부 상임위원으로 임명되어 서무부 백송계(白松溪), 재무부 조귀용(趙貴容), 교육부 이이규(李利圭), 사교부 이지영(李祉永), 산업부 이학찬(李學贊) 위원 등과 함께 사회개혁운동에 앞장섰다.
1925년 4월 24일, 25일 양일간에 서울 시천교당(侍天敎堂)에서 있었던 전조선형평대회에서는 이학인(李鶴仁)·이춘봉(李春峰)·이광수(李光洙) 등 20인과 함께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 후 만주로 망명하여 혁명원로인 정의부의 양기탁(梁起鐸)을 위시하여 고활신(高豁信)·현정경(玄正卿)·곽종대(郭鍾大) 등과 천도교 혁신파인 김봉국(金鳳國)·이동구(李東求)·송 헌(宋憲) 그리고 노령에서 온 이규풍(李奎豊)·주진수(朱鎭秀) 등과 함께 고려혁명당을 조직하여 무장항일 투쟁에 참여하였다.
그러던 중 1926년 12월 만주 장춘(長春)에 있는 동아정미소에서 이동락(李東洛)이 일본 경찰에 체포됨에 따라 당원 16명이 함께 체포되었다. 그는 결국 1928년 4월 22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받았으며, 동년 10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94면
- 기려수필 371·372면
- 동아일보(1927. 12. 20, 12. 21, 12. 22, 1928. 2. 1, 4. 22, 10. 10)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23·925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394·805·92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0권 739·74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