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숭의여학교에 재학중이던 1913년 김경희(金敬熙)·황애덕(黃愛德) 등이 주도·조직한 비밀결사 송죽형제회(松竹兄弟會)에 가입·활동하였다.
동회는 항일민족의식의 고취와 독립지사 가족들의 후원활동을 폈다.
박현숙은 졸업 후 전주 기전(紀全)여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여 교내에 송죽결사대지부를 조직하고 황애덕에 이어 제3대 회장에 선임되어 동회를 이끌었으며 기전여학교에서 과외수업으로 한국사를 가르치는 등 구국교육에도 전력을 기울였다. 3·1독립운동 당시에는 평양시내의 시위운동을 주도하다 일경에 붙잡혀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신병으로 인해 집행유예로 출옥하였다.
1919년 11월 기독교 감리파와 장로파의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가 통합하여 확대·조직된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에 가입하여 평양감리파지회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동회는 재무부·교통부·적십자부의 부서를 갖추고 평양을 비롯한 서부지역의 부인회 조직을 동회의 지회로 흡수하였으며 본부는 지회의 연합체적 성격을 띠었다.
동회는 이후 항일독립사상의 고취와 독립운동 자금모집에 힘써 2천 백여원의 군자금을 모금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펴던 중 박현숙은 1920년 12월 일경에 붙잡혀 1929년 2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22년 5월 28일 가출옥하였다.
그후 박현숙은 신간회(新幹會)의 자매단체로서 1927년에 결성된 근우회(槿友會)에 가입하여 1928년 7월 근우회 임시전국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29년 7월 평양지회 정기대회에서 조신성(趙信聖) 등과 함께 집행위원에 선임되어 재무부와 검사부의 분과를 맡아 여성의 지위향상과 항일독립운동에 힘썼다.
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462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6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36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86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09·414·416·434·437·448·961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8권 877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5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331·338·346·38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