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황해도 연백(延白)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중국 남경(南京)으로 건너 가 금릉대학(金陵大學)에 입학하여 수학하였으며, 1920년 4월경에는 소주(蘇州), 항주(杭州), 상해(上海) 등지로 다니며 애국지사들을 만나 독립운동 방안을 논의하였다.
1919년 6월에는 임시정부의 황해도 연백군(延白郡)조사원에 임명되었으며, 1920년 9월 군자금 모집 등의 사명을 띠고 국내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서울에서 선만상보(鮮滿商報)를 경영하는 한준형(韓俊炯)과 김성환(金聖煥)·김덕영(金德榮) 등을 만나는 등 임무를 수행하고 귀환하던 중 평양에서 일경에 체포되었다. 그는 결국 1921년 4월 2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받고, 동년 5월 23일 고등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4년 3월 25일 출옥 후 형인 편강열(片康烈)을 찾아 만주로 건너가 활동을 계속하였으며, 일경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 1928년에는 반석현(磐石縣)에서 중국에 귀화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민족운동연감 61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10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95면
- 동아일보(1924. 3. 27)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30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117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