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함북 회령(會寧) 사람이다.
한말에 중국사신 원세개(袁世凱)가 서울에 주재할 때 통역관으로서 광무제(光武帝)의 신임을 받아 주권옹호에 노력하다가 일본의 주목을 받자 동만(東滿)으로 망명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하여 한국이 강점당하고 국내로부터 안창호(安昌浩)·안중근(安重根)·이동휘(李東輝)·이 갑(李甲)·이 용(李鏞)·남공선(南公善)·구춘선(具春先)·김 립(金立)·윤 해(尹海) 등이 망명해오자 자택에서 이들을 맞이하여 독립운동의 방안을 협의하였다. 그 결과 그는 동지들과 일반교민의 생계 유지를 위하여 연길도윤(延吉道尹) 공서외교부(公署外交部)에 통역으로 종사하였다.
그후 중국의 법령으로 인하여 한교의 토지가 모두 몰수당하자 북경(北京)으로 가서 총통 원세개를 방문하여 법령을 폐기시켰으며, 이로 인하여 한교를 간민(墾民)이라 칭하여 토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하였으며, 그는 간민회 식산흥업과장(墾民會 殖産興業課長)이 되어 교민의 복지증진에 노력하였다.
1914년에는 신한혁명당(新韓革命黨)을 조직하여 이상설(李相卨)이 본부장에 취임하고 재정·교통·외교부를 두는 한편 상해·장춘·연길·회령·나남(羅南) 등에 지부를 두었는데 그는 연길(延吉)지부장에 선임되어 국권회복운동을 추진하였다.
한편 자신의 가옥을 간민회관으로 제공하였으며 간도 전역에 중·소학교 70여 개교를 설립하여 김약연(金躍淵)·조희림(曺喜林)·박동원(朴東轅)·황병길(黃炳吉)·양하구(梁河龜) 등과 함께 인재를 양성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또한 그는 기독교계통의 인물로서 군무독군부(軍務督軍府)에 가담하여 최명록(崔明錄)·박 영(朴英)·이춘승(李春承) 등과 함께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47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33면
- 고등경찰요사 113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279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784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3권 33·424·4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