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함북 길주(吉州) 사람이다.
1902년경 만주 간도(間島)로 건너갔다. 1912년에 길림성 화룡현(吉林省和龍縣)의 향정관(鄕正官) 및 덕신사(德新社) 사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19년에 기미독립선언의 전주곡인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발표하는데 동삼성 혁명거두인 여 준(呂準)·김좌진(金佐鎭)·박성태(朴性泰)·박찬익(朴贊翊)·정 신(鄭信)·유동열(柳東說)·신채호(申采浩)·김동삼(金東三)·손일민(孫一民) 등 38명과 함께 서명하였다.
1919년 5월에는 대한군정사(大韓軍政司) 군사부 위원으로 일하였으며, 동년 11월에는 북간도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의 회장 임시대리 및 부회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군자금 모금 및 장정모집을 위하여 1920년 4월에 특파원을 국내에 파견하기도 하였다.
1920년 10월에는 의민회(義民會)·신민단(新民團)·광복단(光復團)·국민회(國民會) 등 간도 소재 각 독립운동 단체가 통합하여 임시정부 직속의 간북 남부총판부(墾北南部總辦部)가 조직되어 연길(延吉)·화룡(和龍)·돈화(敦化)·액목(額穆) 지방 등을 관할하게 되자 동 총판부(總辦部) 참사(參事)로서 총판(總辦) 구춘선(具春先), 부총판 방우룡(方雨龍) 등과 함께 일하기도 하였다.
1923년에는 한국독립의용군(韓國獨立義勇軍) 군사위원 및 서무부장 등으로 대일항쟁에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광복후에는 초대 함경북도 지사를 역임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182면
- 동아일보(1969. 12. 18)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187·189면
- 조선민족운동년감 112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65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3권 147·310·311·312·316·325·327·328·33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291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00·310·318·447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78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904·941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7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