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함남 단천(端川) 사람이다.
1914년 홍범도(洪範圖)를 쫓아 무송현(撫松縣)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1920년 김 호(金虎)·김 혁(金赫)·윤세복(尹世復)·이원일(李源一)·오제동(吳濟東) 등과 함께 백두산 서남쪽 무송현(撫松縣)에 흥업단(興業團)을 조직하고 교섭이라는 직책을 맡아 활동하였다.
1922년에는 군비단(軍備團)·태극단(太極團)·광복단(光復團)·흥업단 등이 통합하여 결성된 광정단(匡正團)에 가입하여 외교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25년에는 북만 영안현(寧安縣)에서 김좌진(金佐鎭)·김 혁(金赫)·나중소(羅仲昭)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신민부(新民府)에 가입하여 지방활동에 전념하였다.
한편 1929년에 있었던 길돈사건(吉敦事件), 1930년에 있었던 만보산(萬寶山)사건 등에서 한·중(韓·中) 양민족의 화해를 위해 노력하였다.
1934년에는 북만 동경성(東京城)으로 이주하여 윤세복과 대종(大倧)학원을 설치하는 한편, 안희제(安熙濟)·오제동(吳濟東) 등 여러 동지와 함께 30여곳에 대종교 시교당(施敎堂)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1942년 11월 일제에 의하여 목단강성(牧丹江省)에서 검거되어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7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86·270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2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32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789·804·806·80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