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일제에게 강제로 징용되어 중국 (中國) 대륙에 끌려갔다가 민족적 양심에 더 견딜 수 없어 죽엄을 무릅쓰고 일군 의 영사 (營舍) 를 탈출하여 우군인 중국군영을 찾아가 적의 정보를 제공하고 중국군 제9전구 (戰區) 예하 (隸下) 에 입대하여 유격대 약 30명과 함께 출동하여 적병 1개 분대 (個分隊) 를 전멸시키고 99식 (式) 보총 (步銃) 8정 (挺) 을 노획 (鹵獲) 하였으며 1943년 2월 한국광복군 (韓國光復軍) 제1지대 제3구대 (區隊) 에 편입되어 활동하다가 중국측의 요청으로 다시 99‘군’ (軍) 에 편입되어 대적 (對敵) 활동을 계속하고 있던 중 8.15 광복을 맞인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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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군(日軍) : 일제 군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인천(仁川) 사람이다.
1944년 9월에 징병이라는 명목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 징집되어 중국 제9전구 지역에서 탈출하였다.
탈출에 성공한 후 호북성(湖北省) 유양현(劉陽縣)에 주둔하고 있던 중국군 제9전구 99군 유격대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그후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에 편입되어 활동하다가 다시 중국 99군에 파견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99군에 계속 편입되어 일본군 내에 있는 한국 사병과 비밀리에 연락하여 대적 선전문을 배포하고 한적 사병들의 일군(日軍) 탈출을 적극 지원하는 활동을 전개하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5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450·451·6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