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경북 영덕(盈德) 사람이다.
1912년 동지 이상룡(李相龍) 김동삼(金東三) 등과 서간도 통화현(通化縣)으로 망명하였다고 한다. 1913년 10월 부민단(扶民團)을 조직하고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14년에는 하서구(下西溝)에서 남흥(南興)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에 취임하였다. 이해에 유하현 삼원보(柳河縣三源堡)에서 이상룡 김동삼 등과 한족회(韓族會)를 조직하고 그는 중앙위원에 선출되어 활동하였다고 한다.
1923년에는 상해에서 독립운동의 일원화와 국권회복을 위한 일치단결을 위해서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되자 그도 이 회의에 참석하였으나, 여러 가지 의견의 대립으로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만주에 돌아온 그는 길림성 황기둔(吉林省黃旗屯)에서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1927년 3월에는 신 숙(申肅) 등과 독립촉성회를 결성하기 위하여 전만대표자회의를 소집하였는데 그는 북만(北滿) 대표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1933년에는 하얼빈에서 일본 대사 무등신의(武藤信義)를 격살하기로 남자현(南慈賢) 이규동(李奎東) 등과 계획하였으나, 남여사가 체포되어 사형 당하는 불운을 겪고 거사는 성공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46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1081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30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