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정찬조(鄭燦朝)와 같은 동리에 살면서 항상 의기가 투합하였다. 정찬조는 독립만세 후 동년 10월에 만주로 건너가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입하고 그 특파원이 되어 국내에 들어왔다.
1920년 1월경 평양에서 도청, 시청 및 경찰서 등의 폭파계획을 세우고 동지인 그와 이근수(李根洙)·이학근(李學根) 등과 협의하여 모험청년단(冒險靑年團)을 조직하고 이를 실행에 옮길 준비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거사 직전인 동년 5울 9일 이 사실을 탐지한 일경의 습격을 받고 동지 8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정찬조는 격투 끝에 일시 피신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다시 체포되어 경찰서 2층에서 심문을 받던 중, 격투 끝에 2층에서 뛰어내려 다시 피신하였다.
정찬조는 수사망을 피하여 하수구에 은신하였으나 총상을 당하고 또다시 체포되었으며, 당시 신문들은 '상해 임시정부 특파원 정비장(鄭飛將) 체포'라고 대서특필하였다.
1921년 2월 28일 그는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감형되어 1925년 5월에 출옥하였다.
1921년 서울감옥에 있을 때는 3·1절을 당하여 정치범 전원이 옥중에서 "독립만세"를 불렀으며, 이로 인하여 이근수와 이학근은 간수에게 타살되었으며, 다른 동지들도 무수한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409·420·421면
- 매일신보(1920. 5. 19, 5. 20)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0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