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27.
3. 1943.
- 일경(日警) : 일제 경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경북 영천(永川)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하지 못한 유림(儒林) 인사들은 김창숙(金昌淑)·곽종석(郭鍾錫) 등을 중심으로 파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에 우리의 독립을 인정받게 하기 위한 파리장서(巴里長書)를 제출하였는데 그는 137인 중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으며, 일경의 감시를 피하여 가족을 데리고 만주로 건너갔다. 1920년에 함경북도 지방에 돌아와 임시정부 연통제(聯通制)를 조직하고 윤태선(尹台善)·이상호(李相鎬)·전재일(全在一) 등 수십명의 조직원과 함께 활동하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에는 다시 만주로 건너가 1925년 길림성 화전현(樺甸縣)에서 이 탁(李 )·지청천(池靑天)·김이대(金履大) 등이 조직한 정의부(正義府)에 가입하여 무장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특히 그는 1926년 4월부터 정의부 검무감(檢務監) 고인섭(高仁燮)과 함께 봉천(奉天), 개원(開原)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일경의 밀정 처단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27년 2월 12일에 개원성 동문밖에서 체포되어 신의주로 압송되었다. 그는 결국 1927년 12월 5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 다시 옥고를 치렀다. 1943년에 함경도 지방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사하였다고 하나 이에 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고등경찰요사 250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64면
- 벽옹김창숙일대기 97면
- 신원증명서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93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26면
- 동아일보(1927.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