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황해도 황주(黃州)(일설:평양)에서 태어났다.
1902년 안창호(安昌浩)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1904년에 그와 함께 공립협회(共立協會)를 창립했으며, 1905년 11월 그 기관지로 『공립신문(共立新聞)』을 창간하여 발행인이 되었다.
1907년 4월 신민회(新民會)가 서울에서 창건되자 이에 가입하여 미주지역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3월에 대한제국 정부의 일본측이 추천한 미국인 외교고문 스티븐스가 일본의 한국지배를 찬양하는 발언을 하여 그것이 신문에 보도되자, 최유섭(崔有涉) 등 동지 4명과 함께 공립협회의 대표로서 스티븐스를 찾아가 힐문하고 사과와 정정(訂正)을 요구했으며, 스티븐스가 이를 오만무례한 태도로 거절하자 그를 「구타」하여 징계하였다.
1909년 2월에 신민회의 합법적 외곽단체로서 종래의 공립협회를 확대개편하여 재미주 대한인국민회(Korean National Association)를 조직하고 회장으로 활동하였으며 그 기관지로 종래의 『공립신문』을 『신한민보(新韓民報)』로 바꾸었다. 1909년 4월에 헤이그 밀사로서 미국을 순방하고 있던 이상설(李相卨) 일행과 함께 노령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서 신민회 블라디보스톡지회의 책임자의 일을 맡음과 동시에 이 강(李剛) 등과 함께 재로대한인국민회(在露大韓人國民會)를 조직하여 각 지방에 지회를 설치하면서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이와 동시에 블라디보스톡의 『대동공보(大東共報)』의 주필이 되어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하고, 『신한민보』의 블라디보스톡 통신원의 일도 겸하였다.
1909년 10월 이등박문(伊藤博文) 처단계획이 대동공보사에서 수립될 때, 이에 참석하여 안중근(安重根)의 이등박문 포살을 지원하였다.
1911년 12월 19일 이상설 김학만(金學萬) 이종호(李鍾浩) 최재형(崔在亨) 등과 함께 교민단체로서 권업회(勸業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3 1운동 직전에 만주와 노령에 독립운동단체가 중심이 되어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일명 戊午獨立宣言書)를 발표할 때에는 39명의 동지들과 함께 이에 서명하였다. 3 1운동 직후에는 노령에서 독립부인회(獨立婦人會)가 조직되어 맹활약을 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69 388 410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905면
- 기려수필 8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43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117 12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204 66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558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49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69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195 196 19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