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1910년에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였으며, 1912년 상해(上海)에서 신규식 등이 조직한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하였다.
1918년에는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할 사절단의 자금을 간도(間島), 노령(露領)에서 인수하여 전달하였으며 1919년에는 대한독립의군부(義軍府)의 조직에 참여하여 서무를 담당하였다고 한다.
1919년 4월에는 의군부의 기밀사(機密事)로 상해(上海)에 출장하여 이동녕(李東寧) 등과 함께 길림(吉林)의 상황을 보고하고 국내에서 새로 온 청년들에게 폭탄제조법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1919년 4월에 개최된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의정원 회의에 참석하였다.
당시의 임시정부는 재정(財政)의 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그 동안은 각 지방에서 모여든 인사들 중에 자금을 가져오는 이도 있었고, 또 각기 가까운 계통을 통하여 자금이 들어오기도 하였지만 정부의 조직 또는 운영을 위하여 이를 솔선하여 공식적으로 희사하는 경향이 적었으며, 또 정부의 조직과 함께 5월에 개최된 제4차 의정원 회의에서는 구급의연금(救急義捐金)의 모집을 결정하고 각 도별로 구급 의연금 모집위원을 선출하였지만 그것이 당장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신규식(申圭植)·조소앙(趙素昻) 등 임정 요인들은 동년 5월초에 의정원 의원인 김덕진(金德鎭)과 함께 그를 국내로 밀파하여 서울의 정두화(鄭斗和)를 찾아 자금 조달을 원조 받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귀국 도중에 일경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42 4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162 205면
- 조선민족운동연감 8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64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17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36·3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142 14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