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전해산 (全海山) , 김태원 (金泰元) , 김율 (金聿) 등과 의병 (義兵) 을 규합 도통장 (都統將) 으로서 전남 (全南) 광산 (光山) 대명동 (大明洞) 산곡 (山谷) 에 무기공장을 건설하고 광주 (光州) 무등산 (無等山) 에서 3일간의 전투에서 왜병 (倭兵) 200여명을 사살하였으며 동년 (同年) 에 나주 (羅州) 석문산 (石門山) 에서 5일간에 왜병 (倭兵) 100여명을 사살하고 그 후에도 광주 (光州) 무등산 (無等山) , 나주 (羅州) 풍치 (風峙)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며 1907년 나주군 (羅州郡) 본량면 (本良面) 용진산 (勇珍山) 사호치 (沙湖峙) 전투에서 왜군과 대치 45일간 접전중 막대한 전공을 세우고 전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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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전라남도 광산(光山) 출신이다.
1906년에 전해산(全海山;垂鏞)·김 율(金律) 등과 함께 천여 명의 동지를 의병으로 규합하여 전라남도 광산 대명동(大明洞)에서 무기 제조장을 건설하였다. 그후 광주 무등산(無等山)에서 적과 3일간 격전을 벌여 다수의 적을 사살하였다고 한다.
이어서 나주(羅州) 석문산(石門山)에서 5일간 적과 대적하여 승리하였으며 광주 무등산·함평(咸平) 무동촌(無童村)·나주(羅州) 풍치(風峙) 등지에서 접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07년에 전해산 의진의 도통장(都統將)으로서 의병을 거느리고 광산군 본양면 용진산 사호치(本良面 勇珍山 沙湖峙)에서 왜적과 대치하여 45일간 접전을 전개하여 많은 전과를 올리고 격전 중에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전남도지 4권 40면
- 호남절의록 3권 76면
- 호남지 24면
- 해동인물지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9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