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평남 대동(大同) 사람이다.
평양 숭실중학을 중퇴하고, 매부 김예진(金禮鎭)을 의탁하여 1925년 상해로 건너갔다. 이곳에서 전차회사 차장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1926년 1월 정위단(正衛團)을 모체로 박창세(朴昌世)·강창제(姜昌濟)·김창건(金昌健)·고준택(高俊澤)·김예진(金禮鎭)·김광선(金光善) 등과 함께 강력한 항일무장단체인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를 조직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한편 일제 밀정을 처단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 12월에는 이봉창(李奉昌)에게 군자금과 폭탄 및 권총을 전달해 주었으며, 10여일 후에는 동경(東京)에서 "곡물시세 맞아서 콩은 1월 8일에 팔겠오"라는 거사일 결정 암호전문을 받아 백범에게 전해 주기도 하였다.
1934년 초에 백범의 비밀명령으로 일본총영사관 근무 등정(藤井)경부보의 밀정으로 일하면서 적의 정보를 파악하였으며, 등정경부보로부터 독립운동자의 동정을 조사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고 남경중앙군관학교에 입교하여 훈련을 받았다. 1936년 7월에는 남경(南京)에서 일본제국주의를 무찌르고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목적으로 김동우·오면직·유형석 등과 함께 비밀결사 맹혈단(盟血團=猛血團)을 조직하고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벌였다.
맹혈단원은 일제 밀정 옥관빈 사살, 상해 일영사관 투탄, 일 유길명(有吉明)공사 암살계획 등의 활동을 벌였으며, 그는 1936년 3월 김승온(金勝溫)·오면직(吳冕稙)·김정근(金正根) 등과 함께 체포되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그는 결국 1937년 6월 5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37. 4. 16 해주지방법원)
- 사상정세시찰보고집 263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99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596면
- 동아일보(1936. 3. 8)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61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07면
- 조선통치사료(한국사료연구소) 476 512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58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77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822 824 829 830 831 832 835 83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