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경남 울주(현재 蔚山) 사람이다.
대구사범학교 재학중인 1941년 2월에 항일결사 연구회(硏究會)에 가입하여 농업부를 책임 맡아 활동하였다.
연구회는 1941년 1월에 임 굉(林宏)·이태길(李泰吉)·장세파(張世播) 등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이 민족의식 앙양과 독립을 위한 실력배양을 목적으로 조직한 비밀결사였다. 이들은 당시 국제정세를 살펴 일제가 곧 패망하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다가올 독립에 대비하여 각기 전문 분야의 최고권위자가 될 것을 다짐하였다.
또한 동회는 비밀엄수, 매월 10일 연구발표와 하급생지도 및 동지포섭 등의 방침을 정하고 1941년 2월부터 동년 3월까지 6회의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졸업기를 당하여 회원들이 졸업을 하게 되자 이들은 장기적인 사업계획을 구상하였다. 즉 졸업 후 각기 국민학교 교사로 부임하게 되면 우수한 아동들에게 수재교육을 실시하여 독립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와같은 현지의 활동상황 및 성과를 매월 1회 사무원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이렇게 보고된 상황은 취합하여 다시 전회원에게 배부하기로 하였는데 이때 우송방법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공문을 가장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그는 1941년 3월, 동교 졸업 후 경북 경주소재 하서공립국민학교에 근무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앙양시키며 연구회의 사업을 수행하였다.
그런데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윤독회의 〈반딧불〉이 일경의 손에 들어가게 됨에 따라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그도 일경에 붙잡혔으며 그후 미결수로 2년여 동안 혹심한 고문을 당하다가 1943년 10월에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5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800·804·810면
- 예심종결결정(1943. 2. 8 대전지방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770·775·774·77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