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1907년 고종의 양위와 군대해산의 비보를 듣고 자제와 친척들에게 군자금 백 냥을 주어 심남일(沈南一) 의병진으로 보냈다.
3·1운동을 전후해서는 정재면(鄭載冕)·주창업(朱昌業) 등과 국민당 및 결사대를 조직하는 한편 신덕영(申德永)·최양옥(崔養玉)·김정련(金正連) 등 대동단(大同團)단원들과 연락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즉 전라남도 화순군수(和順郡守)와 능주(綾州)·영광(靈光) 등 각 면장에게
"천만의 천군(天軍)이 습래하면 왜노(倭奴)의 충신은 왜노와 함께 학살할 터이니, 생명을 보전하려거든 속히 사직하라"
는 글을 능주 우체국에서 부쳐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또한 정인채(鄭麟采)·양사형(梁士亨)·양회진(梁會津)·윤자삼(尹滋三)·민영동(閔泳東) 등 각 부호들에게는
"지금 광주에서 조선 독립운동을 위하여 국민당을 조직하고 수십 명의 결사대를 각 지방에 파송하였으니 군자금을 제공하여 사형을 면하라."
는 글을 보내어 상당량의 군자금을 모았다.
그는 숭일학교(崇一學校) 선생인 김정련과 협의하고 상해 임시정부로 군자금을 보낼 계획을 의논하였는데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적에게 탐지되어 체포되었다.
1921년 5월 12일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그후 신병으로 보석되었다. 그러나 보석된 이튿날
"내가 죽은 후 대한자손들아 국권을 회복하라"
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결 순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2권 157·158면
- 동아일보 1920년 음력 4월 9일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