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1924년 11월경 일본 동경(東京)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이홍근(李宖根)·한원열(韓源烈) 등과 사상서적을 탐독하고 흑우회(黑友會)에도 관계하였다. 1927년 10월 이홍근과 함께 귀국, 평양과 원산을 중심으로 무정부주의 단체의 재기를 도모하고 전국에 세력을 신장코자 1927년 12월 흑전계(黑戰系)에 속하는 관서흑우회(關西黑友會)를 조직하였다. 또한 자유연합주의(自由聯合主義)의 기치 하에 노동계급의 해방과 직업적 운동자의 권위주의 배격을 목적으로 잡지 ≪흑색전선(黑色戰線)≫ 지국을 경영하고 별동단체로서 사회생리연구회(社會生理硏究會)·자유소년회(自由少年會)·평양일반노동조합·한천자유노동조합(漢川自由勞動組合) 등을 조직, 무정부주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무정부주의의 조직통합을 위해 1929년 11월 10일·11일 양일간 관서흑우회 주최로 전조선흑색사회운동자대회(全朝鮮黑色社會運動者大會)를 개최하고자 하였으나 일경의 통제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관서부(關西部)·일본부(日本部)·만주부(滿洲部)를 두었다. 그러나 1930년 원산일반노동조합의 노동운동을 계기로 무정부주의자 검거선풍이 전국적으로 몰아 닥쳐 조선공산무정부주의자동맹의 조직이 노출되어 그는 1931년 4월 평양 관서흑우회 사무실에서 붙잡혀, 원산경찰서로 압송되었다. 그리하여 1933년 3월 함흥지방법원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8권 954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9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77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817·818·820~822면
- 동아일보(1933. 3.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