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북 칠곡(漆谷) 사람이다.
1920년에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북만주(北滿洲)로 탈출하였으며,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해에 귀국하였다. 대구에서 서병철(徐丙哲)·박소용(朴韶鏞) 등의 동지를 규합하여 임시정부(臨時政府)의 파견원 허영원(許永元)과 함께 독립운동자금 모집활동을 하던 그는 군자금 2천여원을 모아 상해로 탈출을 계획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 사건으로 그는 1921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다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활동하던 그는 1925년에 김찬규(金燦奎)·신태식(申泰植)·신석원(申錫遠) 등과 함께 상해 임시정부 군무총장(軍務總長) 노백린(盧伯麟) 명의의 군자금 모집에 대한 지령서를 직접 인쇄하여 경상도 내의 부호들에게 배포하고 김찬규를 임시정부에 파견하여 독립운동의 방안을 협의케 할 것을 계획하던 중 밀양(密陽)에서 일경에 붙잡혔다. 이 사건으로 그는 다시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8권 95면
- 판결문(1921. 5. 24 대구복심법원)
- 판결문(1921. 6. 23 고등법원)
- 고등경찰요사 280·28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