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남 진양(晋陽)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경남 일대의 독립만세시위에 가담하였다. 그는 같은해 11월 상해(上海) 임시정부(臨時政府) 특파원인 강태동(姜泰東)·이정래(李丁來)로부터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 명의의 '적(敵)의 관공리(官公吏)인 동포(同胞)에게'라는 격문과 임정(臨政) 내무총장 이동녕(李東寧) 명의의 '남녀학생(男女學生)에게'라는 격문, 그리고 '상업(商業)에 종사(從事)하는 동포(同胞)에게'라는 3종의 전단을 인수받았다. 그리하여 위 세 문건을 이영봉(李永鳳)·김규열(金圭烈)·이운형(李運衡) 등에게 배부하면서 이영봉은 평안남북도, 김규열은 전라남북도, 이운형과 최익무(崔翼武)는 대구(大邱) 지역에 배포하도록 책임을 맡겼다. 이렇게 격문을 전달·배포하던 중 1920년 봄, 일경에 붙잡혀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후 1940년에는 창씨개명(創氏改名)반대 등의 활동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20. 10. 29 경성지방법원)
- 판결문(1920. 12. 4 경성복심법원)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1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416·41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1462·1463·1466∼1469면
- 범죄인명부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205·206·239∼24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