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독립운동 연락원 (獨立運動連絡員) 1919년 장연읍 독립만세사건에 참여, 1920년 만주독립군 (滿洲獨立軍) 에 입대하여 결사대원으로 활약하였고 1924년과 1925년 2회에 차지련 (車芝輦) 동지와 같이 무역상 최재화 (崔載華) 등으로부터 군자금 3천7백원 (円) 을 조달, 본부에 납부하였고 1926년에는 장연 권총 (長淵拳銃) 사건 주범으로 동아일보에 3회나 대서특필로 보도된 바 있으며 1927년 곽호 (郭鎬) 의 고발로 피체 되었으나 탈출하였고 현상금이 붙은 관계로 친지 김화조의 고발로 해주 (海州) 용담포에서 피체 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해주사무소 (海州事務所) 에서 징역 5년을 복역 (服役)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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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황해도 장연(長淵) 사람이다.
1919년 황해도 장연읍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후 일경의 추적을 피해서 은신하였다.
1920년에 만주 봉천성(奉天省) 환인현(桓仁縣) 횡도천(橫道川)에 본부를 둔 독립군의 제3중대에 소속되어 활약하였으며, 1924년부터 1925년사이에 결사대를 조직하여 초산(楚山) 벽룡(壁龍) 등지에서 군자금을 조달하다가 일경과 조우하여 교전하기도 하였다.
1926년에는 장연에 거주하고 있는 부호 곽 호(郭鎬)에게 군자금을 강제조달하고 장연경찰서를 습격하고자 계획하였다가 실패하고 체포되었다가 탈출하였으나, 1927년 다시 체포되어 징역 7년형을 받고 해주(海州)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38면
- 동아일보(1926. 9. 29, 10. 1, 1927.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