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전라북도 임실(任實) 출신이다.
1905년 을사조약의 늑결에 이어 1907년 정미7조약과 군대강제해산이 강행되자, 이러한 일제의 내정간섭을 분쇄시키고자 거의할 것을 결의하고 9월 13일 전라북도 진안(鎭安) 마이산(馬耳山)·용암산(龍岩山) 등지에서 동지 다수와 창의하였다.
이때 동향인 이석용(李錫庸)과 전수용(全垂鏞)이 진안 석전리(石田里)에서 거의하자 정재 이석용(靜齋 李錫庸)의 휘하에 입진하여 박만화(朴萬華)·송판구(宋判九)와 함께 선봉장이 되어 진안·용담(龍潭) 등지에서 왜적과 접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08년 정월 오봉산(五峰山)에 진을 칠 때에는 포군장(砲軍將)이 되어 활약하다가 3월의 운현작전(雲峴作戰)에서 적탄을 맞고서도 힘써 2발을 쏘며
"왜놈의 손에 죽을 진데 차라리 내 칼로 내가 찔러 죽겠다"
하고 곧장 찼던 칼로 목과 배를 찔러 눈을 부릅뜨고 순절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601·60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권 511·519·540·547·55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