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경기 고양(高陽) 사람이다.
1925년 2월 의열단원 오세덕(吳世德)을 따라 상해로 건너가 한국청년동맹회(會長 趙漢用)에 가입 활동하였다. 1927년 8월 여운형(呂運亨)의 추천으로 황포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에 입학하였으며, 졸업 후 중국군에 입대하였다. 또한 동기생인 의열단장 김원봉(金元鳳)의 권유로 의열단에 가입하여 단원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그는 1935년 5월 중국군 헌병사령부 상위(上尉), 1940년 12월 헌병 제8단 소교단(少校團), 1942년 10월 동제2영 소교영장(少校營長) 등으로 복무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의 신변보호를 위하여 진력하였다.
1933년에는 남경(南京)에서 대일전선통일동맹의 결성을 적극 후원하였으며, 그후 5당 통합으로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이 창당되자 이에 가입하여 감찰위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1935년에는 지청천(池靑天)의 요청으로 낙양군관학교를 졸업한 청년 사관들의 보급품을 지원하였으며, 일군내 한적(韓籍) 사병을 광복군(光復軍)에 편입시키는 데도 기여하였다.
광복 후에는 광복군 참모로 전임되어 교포의 안전 귀국을 지원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203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47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586·649면
- 조선통치사료(한국사료연구소) 465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8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15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