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황해도 재령(載寧) 사람이다.
1915년 고향에서 나석주(羅錫疇)·최세욱(崔世郁) 등과 함께 항상 구국의 방도를 논의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 후에는 김덕영(金德永)·최세욱·박정손(朴正孫)·이시태(李時泰) 등과 함께 군자금을 염출하여 해외로부터 부로우닝 권총 다수와 탄환을 구입하였으며, 1919년 4월에 만주 유하현(柳河縣)에서 조직된 한족회(韓族會)에 가입하였다.
그는 1920년 1월 4일 김덕영·최세욱·나석주·박정손·이시태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권총을 들고 이날 오후 8시경 사리원 시북리(沙里院市北里) 237번지에 사는 황해도 부회 최병항(崔秉恒)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 630원을 모금하였다.
그리고 최세욱과 함께 봉산군(鳳山郡)에 있는 최세욱의 친척 집에서 일박하고 다시 장연군(長淵郡)으로 피신하였는데 주구배의 밀고로 1920년 1월 26일 일경에 체포되고 말았다.
1921년 8월 18일 그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7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25·626·627·63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1219·1220·1221면
- 동아일보(1921. 5. 4)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9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392·403·406·40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