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때에는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1920년 3월에는 백운기(白雲起)·안효준(安孝俊) 등과 함께 대한청년결사대원으로서 의주군 비현면 정산동(枇峴面 亭山洞) 김대호에게서 군자금으로 현금 40원을 모금하였으며 또한 5월말까지 의주·용천·철산·선천 등 10개면내에서 군자금 3천원을 갹출하였다.
동년 5월에는 김시황(金時晄 : 일명 仲亮)·박초식(朴初植)·백운기(白雲起) 등과 함께 보합단(普合團)을 의주 동암산(東岩山)에서 조직, 총무로서 활약하였다. 한편 독립단과도 계속 연락을 취하여 무기를 구입, 적기관의 파괴와 주구 숙청에 전력을 기울였다.
동년 6월에는 부원 30명을 거느리고 적의 앞잡이 수명을 사살하였고 선천(宣川) 내산사(內山寺)에 이주할 때에는 승려의 밀고로 일경 30여명과 교전한 일도 있었다.
1920년 11월 서울에 파견된 김도원(金道源)이 일경과 교전하고 총격전 끝에 체포되자 함흥사람 장희원(張喜源)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하여 손문(孫文)의 소개로 황포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에 취학하였다가 진형명(陳炯明)의 반란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였다.
그후 낙양강무당(洛陽講武堂)에서 수업하던 중 봉직(奉直)전쟁을 만나 오패부(吳佩孚)의 직속 참모로 출전하기도 하였다.
1937년 이후에는 임시정부를 따라 전전하다가 홍콩에서 활동하기도 하였으나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에는 은신하여 지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17·323·428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04·115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458·459·483·485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67·68·6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117·119·120면
- 기려수필 30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67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