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단(處斷) : 결단을 내려 처치하거나 처분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평북 철산(鐵山)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상해로 망명하였다. 그는 대한적십자회에 가입하여 군자금을 모집,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한편, 서울에서 이병철(李秉澈)·조용주(趙鏞周)·연병호(延秉昊)·송세호(宋世浩)·안재홍(安在鴻) 등이 조직한 대한청년외교단의 취지에 적극 찬동하여 세계 각국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외교원 특파 등의 활동 계획을 세우고 이를 지원하였다.
그러나 1919년 11월 20일 대한애국부인회 사건에서 독립운동 관계 문서를 발견한 일경에 의하여 청년단의 이병철 등이 체포된 뒤 그도 함께 입건되었다. 그리하여 1920년 6월 29일 대구지방법원의 궐석판결에서 징역 3년형이 선고되었다.
이후 그는 상해에서 임시정부 수립 직후 여운형(呂運亨)을 중심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여하한 모험도 감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조직된 구국모험단(救國冒險團)에 가입하여 폭탄 제조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상해 애인리(愛仁里) 김성근(金聲根)의 집에서 그가 폭탄을 제조 중 폭탄이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나 동지 김홍식(金弘植)·이규호(李圭鎬) 등이 체포된 일도 있었다.
또 한편으로 그는 제조한 폭탄을 가지고 광복군 결사대에 편입되어 평북 철산(鐵山), 용천(龍川), 선천(宣川) 등에서 군자금 모집을 하는 한편, 1920년 8월에는 선천 경찰서 폭탄 투척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이후 상해와 만주를 오가며 의열단에 폭탄을 제공하였으며, 1922년 6월에는 안동(安東)의 이륭양행(怡隆洋行)에 체재하면서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1923년 6월에는 서간도(西間島)를 대표하는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같은 해 7월에는 서울에서 부업공진회(副業共進會)가 열리게 됨에 이를 폭파할 계획을 세우고 폭탄 50개를 서간도의 통의부(統義府)로 발송하였으나 일경에게 발각되어 압수되기도 하였다.
1925년 3월 13일에는 제13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곽 헌(郭憲)·최석순(崔錫淳)·문일민(文逸民) 의원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의 탄핵안을 제안하여 동년 5월에 불신임안이 의결된 바도 있다.
1926년 1월에 그는 교포의 생명, 재산을 보호하는 일제 앞잡이 처단 등의 활동을 위하여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 조직에 참여하였으며, 박창세(朴昌世)를 대장에 추대하였다. 1932년 11월 24일 의정원 의원을 의원 사임하였으며, 이듬해인 1933년 1월 흥사단(興士團) 원동대회가 개최되어 원동반(遠東班)이 조직되자 그는 신언준(申彦俊)·문일민(文逸民)과 함께 제1반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1934년에는 임시정부가 남경(南京)으로 옮기게 되자 그는 한국독립당 남경지부를 조직하고 이광제(李光濟)·이치섭(李致燮)·이동초(李東初) 등과 당을 이끌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49면
- 고등경찰요사 195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36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5 445 471 500 502 504 536 627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167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162 215 439 449 450 484 537 543 549 597 767 825 884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161 221 706 709면
- 동아일보(1920. 6. 30)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84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100 13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32면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334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 239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기2) 427면
- 조선민족운동연감 81·196면
- 판결문(1920. 6. 29 대구지방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