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평북 용천(龍川) 사람이다. 1930년 9월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안창호(安昌浩)·김 구(金九) 등의 지휘하에서 상해 일본군 점령지를 드나들며 일군의 정보수집, 교포 등의 동태를 면밀히 조사하여 보고하였다. 또한 김 구(金九)주석의 명령에 따라 군자금을 수집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1932년 4월 윤봉길(尹奉吉)이 김 구(金九)의 명령에 의해서 홍구공원(虹口公園)에서 폭탄을 던진 사건이 발생하자 일본군의 독립지사 검거령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에 안창호(安昌浩)와 행동을 같이하던 그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다행히도 연소한 관계로 일본 경찰의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서 탈출하여 남경(南京)으로 피신하는데 성공하였다고 한다. 1932년 8월 남경(南京)에서 김약산(金若山)·최석순(崔錫淳) 등과 함께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에 가입하였으며, 1944년 3월에는 동당 감찰위원(監察委員)으로 활동하였다. 1937년 7월 노구교(蘆溝橋)의 충돌로 중·일전쟁이 전면 확대되고 남경(南京)·구강(九江)·한구(漢口) 등지가 일본군에 점령되자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를 조직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입대하였다고 한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조선의용대는 광복군의 창설에 의해 광복군 제1지대로 편성되었다. 이에 따라 그는 광복군 제1지대에 편입되어 낙양(洛陽)·서안(西安) 등지를 왕래하면서 초모 공작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임정의 재정조달을 위해 힘쓰는 등 많은 항일활동을 전개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3권 614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