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3.1운동이후 ‘한성정부’ 수립에 참여하고 상해(上海)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과 임시의정원 의원을 역임한 후 다시 국내로 들어와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홍도는 1917년경 일본에서 유학생단체 동아동맹회(東亞同盟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귀국 후 1919년 4월 서울에서 ‘국민대회’ 절차를 통한 정부수립운동을 전개한 후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국무원(國務院) 위원과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1920년 서울에서 사회혁명당(社會革命黨)에 참여하여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1년 5월 상해 고려공산당 창립대회에서 위원으로 선출되어 북만지방(北滿地方) 선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7월 홍도는 이동휘(李東輝) 등과 함께 코민테른 대표단으로 모스크바로 파견되어 일제의 침략상을 선전하였다. 그 후 국내로 들어와 1924년 7월말 함경남도 함흥(咸興)에서 적기단(赤旗團) 활동으로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적기단은 1922년 소련의 극동위원회 고려부(高麗部)에서 활동하던 이동휘 등 고려공산당 상해파계열의 인물들이 조직한 항일단체였다.
홍도는 1927년 독립운동전선의 통일을 위해 좌우가 합작하여 신간회(新幹會)가 성립하자 함흥지회 간사(幹事)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2월 제4차 조선공산당에 참여하여 집행위원 및 조직부장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소련으로 이주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홍도는 극동변강 내무위원부에 의해 체포되어 1936년 11월 반혁명활동에 대한 혐의로 5년형을 선고 받고 시베리아 교정노동수용소에서 복역하였고 1955년 10월 24일에 복권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不逞鮮人의 動靜에 관한 건(機密公第 4號, 1922. 7. 17)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13)
- 高麗共産黨員 체포(關機高收 第4403-1號, 1922. 4. 19)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鮮人과 過激派(2)
- 上海에서의 共産黨의 상황(高警 第24265號, 1921. 7. 26)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鮮人과 過激派(1)
- 思想事件起訴狀決定判決綴(京城地方法院 : 1932. 7. 7)
- 不逞鮮人 李春塾 외 1명에 관한 건(拓 第6843號, 1921. 2. 4)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上海假政府(3)
- 新朝鮮勞農獨立政府 건설에 관한 건(第9號, 1923. 1. 2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14)
- 東亞日報(1924. 3. 4, 1924. 11. 21, 1925. 3. 12, 1927. 8. 29, 12. 7)
- 朝鮮出版警察月報(1929. 6. 9) 제10호
- 독립운동사 자료(국사편찬위원회) 제2권 임정편ⅱ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제10권, 19권
- 韓國民族運動史料(국회도서관, 1976) 中國編 355~357면
- 高麗共産黨 重要人物 조사의 건1(機密 第103號, 1922. 6. 2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鮮人과 過激派(3)
- 共産黨員 歸滬에 관한 건(機密 第88號, 1922. 3. 13)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鮮人과 過激派(2)
- 在上海 不逞鮮人이 조직한 社會黨 分裂의 건(高警 第18936號, 1921. 6. 1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鮮人과 過激派(1)
- 朝鮮人槪況 送付에 관한 건(警秘 第26號, 1919. 3. 26)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歐米(7)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25. 3. 12)
- 스탈린 시대(1934~38년):정치탄압 한인(고려인) 희생자들(모스크바, 2004 3권 226면)
- 김철수친필유고(역사비평 1989. 5) 350~35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7집 1135면, 제9집 133, 143, 145, 14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