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남 통영(統營) 사람이다.
일본 동경(東京)에서 유학 중 1933·1934년경 일본의 조선홍색공회(朝鮮紅色工會)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중국 망명후 남경(南京)으로 간 그는 조선의열단(朝鮮義烈團)에 입단하는 한편, 1935년에는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에 입당하였다. 동년 10월 중국 남경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朝鮮革命軍事政治幹部學校)를 제3기로 졸업하고, 마춘식(馬春植) 등과 만주방면으로 파견되어 훈련공작을 수행하였다. 이후 조선민족혁명당 특무부원(特務部員)으로 남경 등지에서 활동하였으며, 1938년 6월 조선민족혁명당 간부진의 관내(關內) 안주노선(安住路線)에 반발하여 탈당하고 최창익(崔昌益)의 노선을 지지하던 김학무(金學武) 등이 1938년 9월 결성한 조선청년전위동맹(朝鮮靑年前衛同盟) 맹원으로 활동하였다. 이와 함께 중앙육군군관학교(中央陸軍軍官學校) 특별훈련반을 제6기생으로 졸업한 후 1938년 10월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의 결성시 조선청년전위동맹이 조선의용대에 가입하자, 1941년 5월 조선청년전위동맹 소속원들로 구성된 제2구대 제5전구사령부의 정치지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조선의용대 제2구대는 제1전구와 제5전구로 나뉘어 활동하였는데, 제1전구는 하남성(河南省) 전역과 안휘성(安徽省) 북부 일부 지역을 담당하였고, 제5전구는 호북성(湖北省) 북부, 하남성 남부, 안휘성 서부 등지를 관할하였다.
1941년 조선의용대 무장정치공작원으로 활동하던 중, 조선의용대 본부의 명령으로 강진세 등과 함께 하남성 창덕(彰德) 방면으로 파견되어 항일선전활동에 종사하였다. 이때 그는 유창한 일본어로 일본군을 상대로 선전활동을 전개하여 명성을 드높였다.
1941년 조선의용대가 화북(華北) 팔로군(八路軍) 지역으로 이동함에 따라 화북지역으로 이동하여 동년 가을 태항구(太行區)에서 화북조선청년연합회(華北朝鮮靑年聯合會)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선전활동에 종사하였으며, 1942년에는 조선의용군(朝鮮義勇軍)과 중국 팔로군 신편(新編) 제1여단(第一旅團)에 배속되어 대일공작을 전개하던 중 동년 5월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6卷 128面
- 思想情勢視察報告集 第2卷 29·436面
- 關內地區朝鮮人 反日獨立運動資料滙編 下冊(1919∼1945) 1163·1446面
- 新華日報(1942. 7. 18)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2卷 718·749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4卷 774面
- 解放日報(1942. 7. 31, 1942. 9. 21)
- 思想情勢視察報告集 第1卷 308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