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19년 10월 함북 경성군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연통제 조직인 사감부(司監府)를 설치하기 위해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9월 상순 함북 회령(會寧)에서 김인서(金麟瑞)는 박관훈(朴寬勳), 박원혁(朴元赫) 등과 함께 임시정부 연통제(聯通制) 조직인 함경북도감독부(咸鏡北道監督府)를 설치하고 함북 감독에 강준규(姜俊奎), 서기 박원혁, 재무 박관훈을 선임한 뒤, 함북 각 군에 총감부(總監府)를, 각 면에 사감부(司監府)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이에 김인서와 박원혁은 노춘섭(盧春燮)을 경성(鏡城)에 파견하였고, 9월 중순 노춘섭은 경성에서 이상호(李相鎬)에게 연통제 조직 설치를 권유하였다. 9월 14일 이상호는 김동식(金東湜) 등과 모여 경성군 총감부를 설치하였다. 경성군 총감부는 다시 각 면에 사감부를 설치하기로 결정하여 김동식 등은 경성군 주을온면(朱乙溫面) 사감부와 주북면(朱北面) 사감부를 설치하였다. 이어 10월 31일 주남면(朱南面) 용전동(龍田洞) 장천석(張天錫)의 집에서 현창묵을 비롯한 강학병(姜鶴秉), 임정발(林正發), 최창악(崔昌岳), 이용춘(李容春) 등 7명이 사감부를 설립하고 사감에 장천석, 서기 최창악, 재무 이용춘을 선임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20년 8월 1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소위 대정(大正)8년제령(制令)제7호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20년 11월 2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 취하로 형이 확정되어 청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2년 6월 8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刑事控訴事件簿
- 東亞日報(1920. 8. 22, 8. 27, 8. 31, 9. 5)
- 聯通制 組織의 獨立機關 檢擧의 件(1920. 1. 10)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5)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956) 212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1970) 하권 205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新韓民報(1920. 9. 2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986면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20.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