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경기도 개성(開城) 사람이다.
1903년 용암포(龍巖浦) 사건을 계기로 러·일 양국사이에 전쟁의 기운이 감돌자, 동년 8월 광무황제의 밀사로 러시아와 프랑스로 파견되어 전시국외중립(戰時局外中立)에 대한 유럽 각국의 승인 획득에 노력한 뒤, 1904년 1월 21일 다시 광무황제의 밀명으로 중국 지부로 밀행하여 한국의 국외중립을 선언하여 영국·프랑스·이태리 등 유럽 각국으로부터 중립화를 승인 받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귀국 후 1904년 2월 일제가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를 강제 체결하자, 이용익(李容翊)·이학균(李學均) 등과 함께 한일의정서 체결을 결사 반대하여 일제로부터 체포당할 위기에 처하자, 손탁(Sontag) 양의 집에 피신한 뒤 중국 상해(上海)로 탈출하였다.
그 후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 강제 체결로 조국이 준식민지로 전락되었다. 이에 왕산(旺山) 허위(許蔿)가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을 상대로 항일투쟁을 전기하기 위하여 군자금 모집을 독려하자 이에 호응하여 의병들에게 군자금을 제공하였다.
1909년경 페트로그라드에 있는 이범진(李範晋)이 중심이 되고 연해주의 이상설(李相卨)·전명운(田明雲), 만주의 유인석(柳麟錫) 등과 함께 상해에서 만국평화회의(萬國平和會議) 밀사파견운동을 전개하여 한국이 자주독립 국가임과 일제의 만행을 세계 만방에 널리 알리고자 노력하였다.
그 후 1919년 4월 한성임시정부(漢城臨時政府)가 조직되자 평정관(評政官)으로 선임되어 국민대회를 개최하고 임시정부를 선포하였으며, 동년 11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경기도 개성군 조사원으로 임명되어 군자금 모집과 민족의식 고취 등 반일투쟁에 적극 앞장섰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9집 1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4권 139·300면
- 일본외교문서 37권 310·316·332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2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2집 24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770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08면
- 조선민족운동년감 9∼11·60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1면
- 일본외교문서 36권 718·723·7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