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1919년 보성(普成)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3 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에서 시위를 주도하고, 동지를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계획하다가 상해로 망명하였다. 이곳에서 임시정부의 비밀명령을 받고, 같은 해에 국내에 돌아 와 유성우(柳性佑)와 함께 경북지방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일경에 탐지되어 유성우는 체포되어 옥사하였으며, 그는 1921년 11월 29일 대구지방법원의 궐석판결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일경의 감시를 피해서 의주와 만주를 거쳐 북경(北京)으로 피신한 그는 이곳에서 김정묵(金正默)·최용덕(崔用德) 등과 함께 집의학교(集義學校)를 설립하여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1922년 봄에 북경을 떠나 길림(吉林)으로 돌아 온 그는 길림교육회의 운영을 맡아 교육을 진흥시키는 한편,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에 가입하기도 하였다. 1923년 1월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가 소집되자 길림교육회의 대표로 이에 참석한 그는 헌법기초 위원, 교육위원장에 선발되어 통합된 독립운동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국민대표회의가 뚜렷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내분이 계속되자 그는 만주로 되돌아가 독자적인 항일투쟁 방향을 모색하다가 마침내 일경에 체포되었다. 그는 결국 1924년 10월 2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24. 8. 21 대구지방법원)
- 고등경찰요사 271면
- 범죄인명부(1921. 11. 29 대구지방법원)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305·309·3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