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평안남도(平安南道) 강서군(江西郡) 출신이다. 1933년 10월 초순 이정안(李貞安)의 소개로 전갑성(全甲成)과 함께 영구(營口)에서 배를 타고 상해(上海)로 갔다. 상해에서 곽빈대(郭賓大)의 집에서 1박하고, 다음날 남경(南京)에 도착하여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들어갔다.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서 독립운동을 권유받고 간부학교 제2기생으로 훈련을 받았다. 간부학교는 의열단(義烈團)의 독립군 양성을 위한 군사학교로서 중국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군사간부를 양성하였다.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제2기생은 채동룡 등 55명이었다.
이들은 1933년 9월 16일부터 1934년 4월 20일까지 강소성(江蘇省) 강녕현(康寧縣) 강녕진(康寧鎭)의 증조사(曾祖寺)에서 훈련받았다. 훈련 후 국내와 만주 등지로 파견되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채동룡은 작전 수행을 위해 1934년 6월 28일 남경에서 배를 타고, 7월 10일 중국 천진(天津)에서 영구(營口)로 입항하는 증기선을 타고 이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36년 4월 23일 관동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일보(朝鮮日報)(1936. 2. 20, 4. 25)
- 동아일보(東亞日報)(1936. 2. 20, 2. 21)
-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36. 2. 20)
- 간도 급 만선 접양지방 치안정황 보고 잡찬 제14권 249∼250, 273면
- 사상휘보(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제1호 126면
- 일본외무성특수조사문서 27권 125면
- 경찰정보철(1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