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4월 명제세 (明濟世) 등과 함께 중국 (中國) 천진 (天津) 에서 ‘불변단 (不變團) ’을 조직하고 단장이 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이하 임시정부)의 외곽단체로 지원활동을 전개하면서 동년 10월 31일 평북 (平北) 의주 (義州) 등지에서 행해진 독립만세운동 때 사용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으며, 동년 음 11월 중 서울에 임시정부와 연락을 위해 공화단이란 단체를 조직하려다 자금문제로 중지되었고, 1920년 1월 상해 (上海) 로 건너가 임시정부 요인들과 협의해 3월 1일 독립기념일을 기념해 국내에서 시위운동을 계획했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고, 동년 5월경 서울에서 김동순 등이 조직한 ‘암살단 (暗殺團) ’ 취지서의 인쇄를 주선해 주었으며, 동년 6월 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 9월 체포되어 징역 3년(미결통산 (未決通算) 300일)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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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조만식은 1919년 4월 명제세(明濟世) 등과 함께 중국 천진(天津)에서 '불변단(不變團)'을 조직하고 단장이 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 臨時政府)의 외곽단체로 지원활동을 전개하였다. 동년 10월 31일 평북(平北) 의주(義州) 등지에서 행해진 독립만세운동 때 사용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동년 음력 11월 중 서울에 임시정부와 연락을 위해 공화단(共和團)이란 단체를 조직하였다.
1920년 1월 상해(上海)로 건너가 임시정부 요인들과 협의해 3월 1일 독립기념일을 기념해 국내에서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였다. 동년 5월경 서울에서 김동순 등이 조직한 '암살단(暗殺團)' 취지서의 인쇄를 주선하고 동년 6월 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가 9월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조만식은 1921년 11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대정 8년 제령 제7호 위반 등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다시 상해로 망명하여 1925년 권총과 폭탄을 가지고 서울에 잠입하다가 체포되어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었다. 1928년 출옥하여 다시 만주 안동현(安東縣)으로 나가 활동하다가 1931년 병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 자료 3(국사편찬위원회) 臨政篇ⅲ 172면
- 天津에서의 不逞鮮人 行動에 關한 件(1919. 8. 28) 不逞團關係雜件-鮮人의 部-在支那各地(1)
- 獨立新聞(1919. 11. 11, 1921. 11. 26)
- 東亞日報(1920. 9. 12)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제39집, 34~40, 58~5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7집 1177~117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0집 556~557, 1040~1045, 1047~1062,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1집 106~111면
- 朝鮮日報(1925. 11. 21, 1931. 8. 23)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 1921.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