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조남승은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조병세(趙秉世) 등 49인 연명으로 조약의 부당함과 조약 체결에 조인한 박제순(朴齊純) 등 정부대신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가 일제로부터 '재북경 요시찰인(在北京 要視察人)'으로 시찰 대상이 되었다. 1921년 3월 1일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는 행사가 북경 박정래(朴貞來)의 집에서 열리자 신채호(申彩浩) 등 16명과 함께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독립기념일을 잊어서는 안 될 것, 일본의 노예가 되지 말 것, 상해정부(上海政府) 및 선전부(宣傳部)의 명령을 굳게 지킬 것'을 결의하였다.
1923년 6월 상해에 본부를 둔 조선인과 중국인의 결사단체인 중한호조사(中韓互助社)에서 활동했으며, 1924년 7월 24일 북경한교동지회(北京韓僑同志會)를 조직할 때 규칙기초위원, 집행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924년 8월 중국에서 유럽과 아시아 각국의 반제국주의 단체와 개인이 참가하는 반제국주의운동대연맹회(反帝國主義運動大聯盟會)가 결성될 때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전권대표로 이세영(李世永)과 참여하였다. 1925년 러일협약이 체결되자 북경한교동지회 실행위원에 선임되어 조약 성립에 대한 선후책을 결의하였다. 같은 해 6월 북경에서 영일동맹배척운동에 참여해 보도사(導報社) 동인(同人)으로 '중국 국민의 구국국족운동(救國救族運動)에 당(當)하여 우리 2천만 형제자매에게 고함'이란 인쇄물을 제작 배포하였다.
1926년 10월 16일 안창호(安昌浩)가 제안한 '대독립당(大獨立黨) 결성'을 위해 한국유일독립당 북경촉성회(韓國唯一獨立黨 北京促成會)를 창립할 때 집행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932년 2월 중국에서 귀국하던 중 인천경찰서에 체포되어 같은 해 3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機密 제101호, 上海事件에 대한 不逞鮮人의 後援狀況의 件(1925. 6. 23)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支那各地(5)(국사편찬위원회)
- 公 제92호, 獨立紀念日 鮮人 行動 報告의 件(1921. 3. 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支那各地(1)(국사편찬위원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7집 1366~1367면
- ?第105號, 時局에 관한 報告의 件(1905. 11. 27) 駐韓日本公使館記錄(국사편찬위원회) 24권
- 公 제92호, 北京在住 朝鮮人의 最近 狀況 報告의 件(1924. 3. 6) 朝鮮人에 대한 施政關係雜件 一般의 部(2)(국사편찬위원회)
- 北情 제97호, 北京地方 在住鮮人 一般狀況(1924. 9. 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支那各地(3)(국사편찬위원회)
- 機密 제282호, 支那人 排英日運動 때 不逞鮮人 및 臺灣人의 行動 報告에 관한 件1(1925. 6. 2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支那各地(4)(국사편찬위원회)
- 朝保秘 제1401호, 大獨立黨組織 北京促成會에 관한 件(1926. 11. 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支那各地(4)(국사편찬위원회)
- 東亞日報(1924. 8. 25, 1932. 2. 28)
- 朝鮮日報(1933. 6. 27)
- 고등경찰요사(경상북도 경찰부, 1934) 110면
- 신한민보(1924. 12. 25)
- 중앙일보(1932. 3. 26)
- 不逞團體 北京韓僑同志會 組織에 관한 件(1924. 7. 2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支那各地(3)(국사편찬위원회)
- 高警 제936호, 日露協約 成立에 대한 在北京 不逞鮮人의 行動에 관한 件 2(1925. 3. 24)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支那各地(4)(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