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20년 8월 비밀결사 일심단이 조직됐다. 일심단은 ‘조선인 춘계 대운동회’ 당시 응원단이 기반이 된 단체로, 원산청년회원 중 항일의식이 강한 이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9월 원산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9월 23일 조기천을 비롯한 동지 7명은 남촌동(南村洞) 남산탕(南山湯)에서 목욕을 하고 돌아오던 중 오후 8시경 장춘교(長春橋) 언덕에 도착했다. 최종빈(崔鍾濱), 박연희(朴演熙)가 항일적인 가사의 한양가(漢陽歌)를 부르기 시작했다. 조기천 등 5명이 이에 화답하자 근처의 군중이 모여들었고, 최종빈과 박연희에 발의에 따라 만세운동을 하기로 했다. 이어 조기천 등이 군중과 함께 만세를 연이어 외치며 수백의 군중을 주도했다. 군중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시내의 극장 동락좌(同樂座) 일대의 도로를 행진하며 만세를 부르고 함성을 외쳤다. 군중은 북촌동(北村洞), 장촌동(場村洞), 남촌동(南村洞) 상리(上里) 및 중리(中里) 일대를 행진했으며, 북촌동 및 장촌동의 경찰관파출소, 원산리의 우편소와 일본인 상점 등에 돌을 던지며 건물을 일부 파괴했다.
조기천은 1920년 9월 23일 일심단원이 중심이 된 원산 시내의 만세운동을 주도하며 군중을 이끌다가 체포됐다. 같은 해 12월 22일 함흥지방법원(咸興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출판법(出版法) 위반,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곧바로 공소를 제기했으나 1921년 2월 23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기각되고 ‘출판법(出版法) 위반,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소요(騷擾)’로 확정 선고를 받았다. 이후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2년 5월 13일 가석방됐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21. 2. 23)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674~67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