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함북 명천(明川) 사람이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당시 북간도 용정(龍井)의 은진학교(恩眞學校) 학생으로 학생시위를 주동하였으며, 중국 관내로 넘어가 중앙육군군관학교(中央陸軍軍官學校) 낙양분교(洛陽分校)와 남경(南京) 중앙대학(中央大學)을 졸업한 뒤 조선의용대의 대원으로 활동하던 중 1939년 순국하였다.
그는 북간도 용정(龍井)의 은진학교(恩眞學校)를 다니던 중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북간도에서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는 시위를 일으키다가 왜경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간도에서 5·30봉기가 일어날 때 시위의 선두에 서서 활동하였으며, 1932년 경 중국 남경으로 건너가 중앙군관학교 낙양분교에 입학하였다.
한편 남경의 중앙대학(中央大學)에서 학업을 쌓기도 했던 그는 1938년 6월 경 중국 한구(漢口)에서 결성된 조선청년전시복무단(朝鮮靑年戰時服務團)에 가입하였다. 조선청년전시복무단은 같은 해 5월 조선민족혁명당 제3차 전당대표자회 때 김원봉의 노선에 불만을 품은 조선민족혁명당 내 최창익(崔昌益)·김학무(金學武) 등이 성자(星子) 분교 졸업생 35명과 함께 탈당하여 별동조직으로 결성한 단체였다. 이러한 전시복무단은 같은 해 9월 조선청년전위동맹으로 개칭하여 정치단체로의 면모를 갖추었는데, 같은 해 10월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가 창설될 때 편입되었다.
정붕한은 이러한 조선의용대의 대원으로 공작활동을 전개하던 중 병을 얻어 1939년 3월 8일에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海外의 韓國獨立運動史料(國家報勳處) 第8輯 68·104∼106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1輯 82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