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평북 철산(鐵山) 사람이다.
1919년 평북 선천(宣川)의 신성중학교(信聖中學校)에 재학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부의 전체사(傳遞使) 역할을 수행하며 임시정부의 기밀문서와 「독립신문」을 배포하는 활동을 펼쳤다. 그 후 1922년 동지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한 그는 군자금 송달차 중국 상해로 건너가려다 국경 근처에서 일경에 붙잡혀 18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일본 형사를 격투 끝에 격살(擊殺)한 그는 일경의 검거를 피해 북만주로 망명하려다가 1926년 봄 하얼빈에서 일경에 붙잡혀 본국으로 압송 도중, 기차에서 뛰어내려 부상을 입은 채 중국 상해로 건너갔다. 상해 도착 후 나창헌(羅昌憲)·강창제(姜昌濟)·고준택(高俊澤) 등이 일제 요인의 암살과 관공서 파괴를 목적으로 조직한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 대원으로 가입한 그는 1926년 4월 상해 일본총영사관에 갇혀 있는 의용대원 최병선(崔炳善)·장영환(張英煥)을 구출하기 위해 상해의 번화한 거리에서 일경들과 권총으로 교전하며 일경을 사살하고, 본인의 다리에 상처를 입은 체 포위를 뚫고 탈출하는 대담한 행동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 후 다리 상처가 완쾌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926년 6월 1일, 서울에서 유희황제 인산일에 거사를 감행하기 위하여 병인의용대 대원 김석룡(金碩龍)·김광손(金光孫)·고준택 등과 함께 권총 1정, 폭탄 3개를 소지하고 국내로 잠입해 오다가 황포탄 부근에서 일본 경찰에 의해 붙잡혀 상해 일본총영사관으로 송치되자 6월 7일 자결 순국하여 상해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부) 105면
- 기려수필(국사편찬위원회) 29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7권 605·610·611면
- 동아일보(1926. 6. 9, 6. 19)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8권 161·16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93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1집 152·153·427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631면